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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국영통신 “대통령 헬기, 기술적 결함으로 추락”…미국 책임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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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진주꽃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56회   작성일Date 24-05-26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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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국영통신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을 초래한 헬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기술적 결함’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은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시작했다. 대통령 보궐선거 날짜는 다음달 28일로 정해졌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20일(현지시간) 라이시 대통령을 기리는 영어판 기사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일요일(19일) 댐 준공식에서 타브리즈 정유공장으로 돌아오던 중 기술적 결함(technical failure)으로 발생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순교했다고 보도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도 이란 당국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고 있지는 않으나, 기술적 결함을 추락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군은 추락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앞서 IRNA 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했던 추락 헬기가 미국산 벨-212 기종이라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해당 헬기가 수십 년 전에 도입된 노후 기종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항공 분석 회사인 시리움 통계를 보면 이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벨-212 헬기 15대의 평균 사용 연식은 35년이었다.
    미 공군 예비역 출신의 CNN 군사 분석가 세드릭 레이턴은 샤(이란 국왕) 집권 후기인 1976년 벨-212 헬기가 상업적 형태로 처음 (이란에) 도입됐다. 그전에는 미군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이 헬기 기종이 실제 운용되기 시작한 건 이르면 1960년대 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항공 웹사이트인 스크램블에 따르면 이란은 추락한 벨-212 헬기를 포함해 미국산 항공기 5대를 VIP 편대용으로 보유하고 있다.
    1960년대 이 헬기를 처음 개발한 벨 텍스트론(옛 벨 헬리콥터)은 이날 성명을 내고 벨은 이란에서 어떤 사업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란 헬기를 지원하지도 않는다며 이번 사고의 헬기 상태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WP는 이란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로 인해 이런 항공기들의 유지·관리가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이란은 1979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수년에 걸쳐 제재가 강화된 것은 물론 유엔 및 유럽으로 확대됐다. 제네바 대학원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파잔 사벳은 WP에 지난 15년간 제재와 수출 통제가 강화된 이후 이란이 항공기와 부품을 합법적으로 수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교장관은 자국에 제재를 가한 미국이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리프 전 장관은 애통한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이라며 미국은 항공업계가 이란에 판매하는 것을 제재해 대통령과 그 일행들의 순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범죄는 이란 국민의 마음과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악천후 상황에서 45년 된 헬기를 띄우기로 한 결정의 책임은 이란 정부에 있다. 다른 어떤 행위자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의 제재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란 정부는 21일 사고가 일어난 동아제르바이잔주 타브리즈와 수도 테헤란 등에서 첫 장례식을 엄수했다. 또 오는 23일 라이시 대통령의 고향인 마슈하드에 유해를 안장하기까지 장례식과 추모식을 여러 차례 열 계획이다.
    IRNA는 대통령 보궐선거가 다음달 28일 실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전날 모하마드 모크베르 제1대통령을 보궐선거를 관리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내가 아는 최고령의 할매는 엄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 엄마도 할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할매가 아니고 그냥 엄마였으니까.
    내 엄마는 1926년생, 올해 98세다. 구례 내려오기 전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그 세대 중 고생으로는 상위 0.1%에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들 거라 확신했다. 1948년 겨울부터 1954년 봄까지 지리산에서, 체포된 이후 7년간 감옥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마흔이 다 되어 세상으로 돌아왔다. 가난과 산에서 얻은 위장병이 천형처럼 찰싹 들러붙은 엄마의 삶은 내내 고달팠다. 노년에는 고된 노동으로 척추협착증까지 얻었다. 구례 내려와 알았다. 시골 할매치고 엄마보다 고달프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 시대의 누구나 엄마만 한, 때로는 엄마보다 더한 삶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엄마가 아픈 추억을 들먹일 때마다 나는 야무지게 엄마 말을 뚝 잘랐다.
    알고 보니 엄마는 고생 안 한 편이던데? 태어나자마자 부모 잃은 사람, 굶주려 죽은 사람 천지인 시대였잖아. 엄마는 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굶지도 않았잖아? 공부 못한 게 한일 뿐이지. 산에서 고생한 건 엄마 선택이었고.
    매몰찬 딸의 말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속 깊고 다정한 성품의 엄마는 객관적이다 못해 냉정한 딸의 말이 늘 서글펐으리라. 그러나 한 번도 나를 나무란 적이 없다. 나무라기는커녕 노상 고맙단다. 사실 엄마를 모시면서 걱정이 많았다.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엄마가 늙어가면서 사람들을 괜히 의심하고 미워하지는 않을지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그런 노인들을 많이 본 탓이다. 엄마 성격상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았다. 기우였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얼마 전 오랜만에 사촌 동생이 왔다. 워낙 고령이라 오래 보지 않은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보자마자 동생의 손을 잡고는 등을 두드렸다. 아이, 니가 에레서부텀 그리 이삐고 똑똑했니라. 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순간 나와 동생의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동생이 착하긴 했지만 예쁘고 똑똑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수준이라는 걸 자기도 알았다.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늘 그런 식이다. 늙으면서 새롭게 변조된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착했고, 엄마 속을 썩인 적이 없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사춘기 시절의 내 꿈을 꾸고 놀라서 잠이 깼다. 어린 게 어쩌면 그렇게 독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엄마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장 먼저 잊었다. 산에서의 기억만 빼고(그러니까 지리산에서 보낸 청춘의 시간이 엄마에게는 고통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운조루 종부 할매
    죽도 않고 늙어가는
    한센떡, 장센떡
    요즘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친다. 밥을 차려갈 때마다 엄마는 말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밥상머리의 대화는 대충 이러하다. 아이,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나가 오래 상게 니가 고상이다. 고생은 무슨. 하루 세 끼 밥 채리는 것이 고상이제. 정확히는 두 끼다. 하루 두 끼인 게 얼마나 다행이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못된 딸이다, 나는.
    엄마는 하루 세 끼, 이십 년 나를 먹여 살렸잖아. 엄만디 자석 묵에 살리는 것이 당연허제. 딸인디 엄마 묵에 살리는 것이 당연허제. 아이가. 부모허고 자석허고 똑같가니? 시상에 니 겉은 딸 없다. 나가 워치케 니 겉은 딸을 났능가 참말 신기해야. 씨헐라고 났능갑서. 먹는 즐거움조차 천천히 잊어가는 엄마가 유일하게 맛있어하는 사골국을 먹다 말고 식탁에 쌓여 있는 뉴케어와 과자를 둘러보면서 배시시 웃는다. 시상에 나 겉이 행복한 사램 있으먼 나와보라 그래라. 나가 먼 복이 이리 많은가 모리겄어야. 우리 딸이 최고다, 최고! 이토록 소박한 엄마의 감사는 혹 맛있는 거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온 가난한 삶의 결과물이 아닐까. 더 많은 것을 누렸으면서도 불평불만투성이인 나는 누린 것도 없이 감사할 줄 아는 엄마가, 엄마 세대의 할매들이 경이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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