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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고병권의 묵묵]발목들을 향해 건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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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진주꽃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8회   작성일Date 24-08-2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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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믿기지 않겠지만 2021년 12월에 시작된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년의 평일 아침을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다. 처음에는 출근길 지하철에 집단 탑승을 시도했고, 무정차 통과 조치가 시행된 뒤부터는 승강장에서 구호만 외쳤다. 그것까지 금지되자 침묵한 채 피켓만 들었고, 침묵조차 불허인 지금은 승강장에 들어갔다가 끌려 나오는 일만을 반복하고 있다.
    언론도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더 이상 보도하지 않는다. 대개 구경꾼들은 심각한 것이 아니라 화끈한 것을 원한다. 언론도 그렇다. 자신의 사명에 어떤 꽃단장을 하든, 언론이 최고로 바라는 것은 피이고, 그게 어렵다면 머리채를 잡아야 하고, 최소한 욕설이라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면 보도 가치가 생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했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언론에 관한 뒤집힌 명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국이 장애인들에게 승강장을 원천봉쇄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대로 두고 갈등만 봉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이 없으면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승강장 원천봉쇄로 갈등을 ‘봉쇄’언론도 출근길 지하철 행동 외면
    막힌 장애인들 ‘포체투지’ 나서이들을 지켜보는 승객은 없어누군가 손잡고 응답해 줬으면
    이제 지하철은 장애인들 없이 정상운행 중이고 시민들도 예전처럼 장애인을 출근길에 만날 일이 없다. 공감을 얻으려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불편이 사라지자 돌아온 건 무감한 일상이다. 공감은커녕 반감조차 없는 무감한 일상. 네 고통은 있다지만 내 불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이 빤한 술수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역부족이었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들이 달려들어 끌어내는데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100일간의 ‘포체투지(匍體投地)’다.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면 한 명이라도 탑승해 목소리를 내보겠다는 것, 시민들의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없다면 발목을 향해서라도 말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포체투지는 두 무릎과 두 팔, 머리까지 땅에 대고 절을 하는 불교의 오체투지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말만 따온 것이고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실제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객실 바닥을 포복하듯 기어가고(그래서 ‘포체’라고 부른다), 그것조차 불가능할 때는 바닥에 누워 객실 천장을 보며 말을 한다. 이런 시위를 지금 50일 넘게 이어가고 있다.
    사실 장애인들의 포체투지에는 승려들의 오체투지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입혀져 있다. 비장애인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기어갈 때 장애인들은 칼보다 날카롭게 찌르고 바위보다 무겁게 짓누르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도 생존을 위해 비장애인들 앞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이 많았다. 포체투지는 이 동일한 몸짓을 구걸이 아닌 저항의 언어로 바꾸어놓는다. 투지(投地)에 투지(鬪志)를 담은 것이다. 저희는 시민불복종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시민으로 여겨주지도 않는 이 사회에 저항하는 중입니다.
    포체투지가 가능한 시간은 지하철 보안관들이 들이닥치기까지 기껏해야 10여분이다.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려 객실 바닥에 앉으면 객실이 잠시 술렁인다. 그러고는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갑자기 변화된 공기를 감지하는 촉수 하나를 쫑긋 세워둔 채 모두가 가만히 있다.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을 지켜보는 승객은 없다. 그러나 누군가 지금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승객도 없다. 시민 여러분, 저희도 시민입니다. 그저 스마트폰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승객도 없다. 모두가 모른 척하면서 모두가 안다는 것을 안다.
    그의 선물
    사람의 우물
    실패의 말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승객들은 때에 맞춰 발꿈치를 옮겨 길을 내주고 장애인은 그 좁은 길을 노를 젓듯 팔꿈치로 기어간다. 그는 자신의 요구를 담은 종이를 승객들에게 전하지 못한 채 객실 바닥에 붙이고 승객들의 얼굴이 아닌 발목들을 향해 말을 한다. 승객들은 발목들 뒤에 숨어서 그를 보지 않은 척 보고 듣지 않는 척 듣는다.
    아,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면 좋겠는데, 그리고 승객 중 누군가 돌아앉아 손을 잡고는 응답을 해주면 좋겠는데, 갑자기 한 인물이 부하직원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쳐 공무를 집행해버린다. 열차 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시위 집회는 금지입니다. 그러고는 허가받지 않은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입니다라는 말을 객차 바깥으로 끌어내버린다.
    한평생 생명과 평화, 정의의 길을 걸어가는 문규현(79) 신부의 삶이 책으로 출간됐다.
    책을 펴낸 전주의 작은 출판사 ‘파자마’는 자칭 ‘길바닥 신부’인 문규현 신부에 대해 객관적으로 담백하고 간결하게 쓰고자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마음과 영성에 끌려 들어갔다며 온 힘을 다해 끊임없이 걸어가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실천으로 바꾸고자 했던 문 신부의 이야기 ‘너 어디 있느냐’ 사제 문규현을 쓰게 됐다고 20일 밝혔다.
    글쓴이 문상붕·이정관·장진규·형은수씨는 30년 이상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온 전북국어교사모임 선생님들이다. 이들은 20여 년 전부터 문 신부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청소년 뚜버기’ 활동을 하며 그의 생각과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
    문규현 신부는 1989년 8월15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가한 임수경씨(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3학년)의 손을 잡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1998년에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또 한 번 ‘영어’의 몸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줄곧 ‘현장’을 지켰다. 그의 삶 자체가 생명평화운동의 뚜렷한 구심이었다.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으려고 전북 부안 해창갯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65일 동안 목숨 걸고 삼보일배를 했다. 2008년엔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를 이끌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지리산 하악단에서 파주 임진각 망배단까지 400㎞를 124일 동안 땅바닥을 기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됐다.
    우선 사제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1부, 사제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2부, 임수경씨와 함께 분단의 벽을 넘는 과정을 소개한 3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고난의 시간을 보낸 4부, 문 신부가 살아온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삶의 의미를 정리한 5부로 구성했다.
    1945년 1월 1일생인 문 신부는 자신을 ‘해방둥이’가 아니라 ‘분단둥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휴대전화 뒷자리가 ‘0815’이다. 전북 익산 황등에서 부친 문범문씨(베드로)와 모친 장순례씨(수산나)의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5대째 천주교 집안으로 두 아들은 신부가, 한 명의 딸은 수녀가 됐다.
    2005년 2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로 주소를 옮긴 뒤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을 했다. 2009년 10월22일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투쟁 중 쓰러져 의식불명, 사흘 만에 회복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주임신부를 마지막으로 본당 사목에서 은퇴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대표,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사단법인 생명평화마중물 대표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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